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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교육대학교의 역사는 1946년 5월 23일 경기도립 개성사범학교의 설립인가로 시작된다. 개성공립사범학교는 설립인가를 받음과 동시에 같은 날 초대교장에 이헌구 선생이 취임하였고, 교두(현 교감) 1명, 교사 1명 외에 강사 13명이 임명되어 4개월 단기교원양성과정 남·여 각 50명으로 편성된 2개 학급을 개설 운영하였으며,. 같은 해 9월 1일에는 제2대 교장으로 양만영 선생의 취임과 함께 교감외 교사 15명, 강사 13명으로 교직원이 재구성되었고, 학생은 초급중학교(수업연한 6년) 2학급, 본과(수업연한 3년) 남·여 각 1학급, 강습과 (수업연한 1년) 남·여 각 1반으로 편성되어 경기도 유일의 초등교원양성기관으로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다.
개성의 송악산을 뒤로하고 38선 가까이에 설립된 개성공립사범학교는 1950년 6월 25일 북한 공산집단의 남침으로 전시학교체제로 전환, 피난지인 부산시 괴정동에서 1951년 9월 1일 춘천사범학교와 함께 연합사범학교를 운영, 같은 해 12월 25일 사범 본과 3회 졸업생 68명을 배출하였고, 1952년 3월 25일 본과 4회 졸업생 25명을 배출 하였으며, 같은 해 인천으로 옮겨와 4월 1일 인천 신흥초등학교 교사일부를 빌어 사범과 3개학급, 병설중학교 3개학급과 연수과 1개 학급의 신입생을 모집, 같은 달 26일 숭의초등학교의 교사를 빌어 수업을 계속하며 개성 으로 수복할 것을 기다렸으나 현재의 군사분계선에 따라 휴전할 전망이 굳어져 개성으로 수복할 수 없게되어 1952년 6월 28일 국립 인천사범학교로 교명 및 위치변경의 인가를 받음으로서 개성공립사범학교가 국립인천사 범학교가 되었다.
사회의 격심한 변동과 과학기술의 급격한 발달은 많은 지식의 터득이 요청되어 초등교원 양성기관의 대학승격 문제가 대두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요청으로 1955년 10월 29일 문교부에 의해 '교육특별심의위원회'가 설치되고, 동 위원회 사범교육분과위원회가 1957년 6월 27일 교육대학의 설치를 내용으로 한 초등교원 양성제도 개선에 관 한 결의을 문교부장관에게 답신하였다. 교육부에서는 이를 연구검토 2년제 교육대학 설치요강을 마련 교육대학 설립을 추진하게 되며. 1961년 9월 1일 군사정부의 국가재건 최고회의에 의해 제정된 '교육에 관한 임시특례법 '에 의해 교육대학의 설립에 대한 법적 근거가 마련되고, 1962년 2월 7일 각령 제 455호에 의해 국립학교령이 개 정되고, 같은 달 17일 인천교육대학 설립이 인가되어 '문관 제2258'에 의해 인천교육대학으로 발족, 고등교육기 관으로서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열게된다.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의 한국사회는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격동의 시기이다. 1968년 3선 개헌, 1971년 대학생 교련실시, 1971년 국가비상사태 선언, 1972년 유신, 1974년 긴급조치령 공포 및 경제개발계획을 수립 한 국경제의 비약적인 성장을 꾀하는 등 격동을 겪고 있었다. 본 대학은 이러한 대외적인 변화에 직접 간접적인 영 향을 받으며 조용한 성장을 거듭하였다. 경기도 일원의 초등교원의 수급을 고려 전국 교육대학 중 가장 규모가 큰 대학으로 발전하였고, 교수들의 학문연구활동의 지원을 위해 연구비 지급과 함께 각종학술회를 개최하는 한 편 다수의 연구논문들이 산출됨에 따라 논문집이 학문영역별로 나누어 발간하였고, 1968년 6월 4일 교육연구소 설립에 이어 기전문화연구소, 과학교육연구소를 설치하였다. 학생지도의 효율화를 위해 1969년 9월 1일에는 학 생지도연구소가 부설되었으며, 학생들의 학습활동도 심화과정 교과별 선택반을 운영함으로서 활발한 면학풍토 가 조성되어 고등교육기관으로서 내실을 다지게 된다.
1970년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순조로움 발전만을 거듭하여 오던 본 대학은 주로 교육외적인 영향 아래 여러가 지 시련을 감수하여야만 하였다. 이시기 본 대학의 학사행정이 결정적인 타격을 받은 것은 한국의 경제적인 여건 의 변화에 기인된 초등교원 수급의 차질에서였다. 졸업생의 미발령 문제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게되었고, 1976학년도 신입생 정원이 280명으로 감축되는 어려움을 겪게된다.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하여 당국은 당 국 나름대로, 대학은 자체적으로 여러 가지 조치를 강구하였다. 5개 교육대학의 폐교, 교육대학 교수들의 시·도 교육위원회 파견 등의 국가적인 처방과 함께 자질향상반 설치와 학기중 초등교원의 연수교육 등은 교육대학이 자체적으로 취한 조치이다. 교수 및 학생활동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1976학년도부터 교수 재임용제와 전임교 원에게 지급되는 연구비에 상응하는 연구업적으로 1년에 논문 한편씩 제출하는 제도가 도입되었고, 학생자치활 동도 1975년부터 학생회가 학도호국단으로 개편되었다.
교육대학을 4년제로 개편해야 갰다는 생각이 태동한 것은 정부의 장기종합교육계획심의회가 발족한 1969년이 다. 이러한 논의가 실현된 것은 1980년 국보위의 7·30 조치에 의해 초등교원의 자질을 향상시키는 방안으로 교육 대학의 수업연한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여 1981학년도부터 연차적으로 4년제 교육대학으로 개편하겠다는 정 부의 강한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본 대학은 2차 연도인 1982년 3월 1일 4년제 교육대학으로 개편된다. 본 대학은 4년제 개편발표가 있은 후 1981년 3월 28일 '대학발전계획위원회'를 구성 대학의 조직과 운영, 대학의 시설, 교수 연구활동의 지원, 학생생활 지도, 교육과정의 편성과 운영 및 대학발전계획 수립을 위한 제언 등을 담은 4년제 대학 발전안을 구상하고 교수세미나를 거쳐 계획안을 확정 실현함으로서 4년제 대학으로 새 출발하였다. 4년제 대학으로 출범한 후 교수의 연구활동과 학생들의 면학활동은 더욱 활기 있게 추진되었고, 장학기금의 조성과 장 학금 지급 확대를 위한 노력에 동문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이루어 졌다.
1984학년도는 본 대학의 20년 역사상 최초로 3학년이 생겼다. 매년 학사운영에 관한 제반 사항을 종합, 검토, 평 가하고 장·단기 대학발전을 위한 논의를 갖기 위해 교수세미나가 개최되고, 교수들의 연구활동이 결실을 맺어 그 성과가 크게 빛을 발하였다. 학생들도 각 학과 나름대로 학회를 조직하여 학문연구와 면학분위기 조성에 구심점 이 되어 활발히 활동함으로서 4년제 대학의 면모를 다져갔다. 1985학년도부터 초등학교 교사를 대상으로 한 야 간·계절학급의 학사과정을 신설하였으며, 1986학년도에는 대학문화의 창달을 기한다는 목표 하에 대학의 상징물 을 제정하였고, 같은 해 6월 28일에는 인천시 부평구 계산동 산 59 -12번지 일대에 총 177,823㎡의 부지를 마련 새 캠퍼스조성 기공식을 현장에서 가졌다. 한편 1985년 총학생회 부활과 동시에 활발해진 학생들의 자치활동은 학교당국과 끊임없이 마찰을 빗었으며 1988년 9월 기성회비 공개를 요구한 학내 소요는 교육체계의 혼돈을 야기 그 치유에 많은 시간이 요구되었다. 1989년 2월에는 본 대학의 40년 발자취를 총 정리한 인천교육대학사, 제1집 (1946 -1983)을 발간하였다.
새롭게 마련한 계산동 캠퍼스에 강의·연구동과 행정본부·도서관이 준공되어 1989년 3월부터 부분 이전을 시작한 본 대학은 1990년 하기휴가 중 완전 이전하였다. 이전 후 당면 과제는 강의실 및 연구시설 확충과 정비, 복지시설 마련과 정비, 학생활동공간 마련 등 쾌적하고 안락한 교육환경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운동장 건설, 학 생회관, 체육관, 계양생활관 완공, 본부·도서관 증축, 제2강의동(과학관) 착공 및 전산망 구축 등 교육시설 확충 과 조경사업이 추진되었다. 1993년 3월 1일에는 교명이 인천교육대학에서 인천교육대학교로 변경되었으며, 1994년 입학정원이 680명으로 증원되어 전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초등교원 양성기관이 되었고, 인천·경기 초등 교육의 현실을 감안 인천·경기반을 운영하였다. 한편 교수 연구활동지원을 위해 학술연구비 증액과 연구교수제 도 제정 및 해외 장·단기연수기회를 확충하고, 국제학술 심포지움을 개최하고 외국대학과의 자매결연을 맺어 학 술교류를 추진하였다. 1995년에는 사회교육원을 설치하였고, 1996년에는 교육대학원을 설치 개원함으로서 고등 교육기관의 면모를 갖추었다.